약할 때 강함

11/10/2021

● 성경통독 : 고린도후서 10:1-13:13 ● 묵상말씀 : 고린도후서 12:6-10

10킬로미터 경주나 마라톤에서 들리는 출발 총성은 주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휠체어 경주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라고 여기는 것을 가졌지만 그것을 자산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좌절을 한번 겪었고 그것을 승리로 바꾸었습니다.
휠체어 경주자들처럼 바울 또한 육체적인 약점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는 바울이 그것을 고통스럽고, 장애라고 말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힘든 상황이 그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약점을 그의 장점으로 여겼습니다. 본문을 읽을 때, 여러분의 ‘한계’를 생각하시고, 그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십시오.
오늘날은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적인 연약함을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연약함이 재산이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부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상황을 완전히 반대로 보십니다. 우리가 능력 있고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함과 무력함을 느낄 때 하나님의 필요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연약함을 느껴보셨습니까? 당신의 육체적이거나, 감정적, 정신적 또는 영적인 약점은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의 약함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을 의지하십시오. 당신의 재능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연약함 또한 감사하십시오(고린도후서 12:9). 그것이 기독교인의 성품이 계발되도록, 하나님의 일하심이 성취되도록, 그리고 당신의 깊이 있는 예배를 도울 것입니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이웃

11/11/2021

● 성경통독 : 갈라디아서 1:1-2:21 ● 묵상말씀 : 갈라디아서 2:17-21

한집에 있는 어린이와 강아지는 사실상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놀고, 자고 또는 어려움에 처하는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결혼 혹은 어린아이와 강아지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친밀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분리할 수 없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를 묘사합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의 삶을 회상합니다. 바울은 자신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고 까지 이야기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얼마나 친밀하십니까? 바울은 예루살렘 밖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갈라디아서 2:20)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받아들일 때 그의 죄의 본성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다른 삶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적인 실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참된 것을 품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서 죽었던 것처럼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고 또한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6:5).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 영적으로 살아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사슬에 메이지 않게 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유혹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강하게 만드시는 자신감과 유혹을 피하도록 도우시는 방법을 통해 그 유혹에 저항하십시오.

하늘의 아버지

11/12/2021

● 성경통독 : 갈라디아서 3:1-4:31 ● 묵상말씀 : 갈라디아서 4:1-7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녀로서 성장하는 것은 확실히 그곳에서만의 특혜가 있습니다. 학교 가는 날은 항상 리무진을 타고 등하교 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대통령인 당신의 부모님과 함께 훌륭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캠페인 기간에는 부모님과 함께 나라 전체를 여행하게 됩니다. 당신은 집에서 둘러봐야 할 수백 개의 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특권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갖지 않게 될 것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대통령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부유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가 쓴 편지에서 상기시켜 주듯이 이보다 더 위대한 특권은 없습니다. 왕이신 분의 자녀가 되는 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마의 법 통치 아래에서 양자는 아버지의 재산으로 모든 법적인 권리를 보장 받습니다. 입양된 자녀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동등하게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아버지의 가족 안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 전에 우리는 모두 죄의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희생을 우리의 빚에 대한 지불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상속의 권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녀들입니다(갈라디아서 4:7). 하나님은 당신의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 당신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친자녀로서 사랑스럽게 환영하실 것을 자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 열매

11/13/2021

● 성경통독 : 갈라디아서 5:1-6:18 ● 묵상말씀 : 갈라디아서 6:4-10

바울은 그의 삶을 씨를 심으며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씨 뿌림과 수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사단에 의해 길러진 열매와 성령에 의해 길러진 열매를 구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둘의 차이점은 대단히 큽니다.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모든 믿는 자들이 씨를 심고 나무를 기르며 열매를 수확하는 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의 영원한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의 즉각적인 결과를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왜곡할 때는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 우리의 신용이 얼마나 떨어지는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습니다. 신용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신뢰와 우정에 해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직업을 잃기도 하며 가족 관계를 해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결과들은 부도덕 한 씨를 뿌림에 대한 수확물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8)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심을 때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5:22-23).
당신은 어떤 종류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까? 당신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심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당신을 위한 것들을 심고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심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심은 것 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 열매가 맺혀질지 보기 위해 인내하십시오.

벽 허물기

11/14/2021

● 성경통독 : 에베소서 1:1-3:21 ● 묵상말씀 : 에베소서 2:11-14

1989년 11월, 역사 속에 우뚝 서있던 장벽이 땅속으로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서독으로부터 도주한 동독의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지어졌던 베를린 장벽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더 이상 베를린 장벽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분단되었던 사람들이 재결합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1990년 10월 독일 연방 국가가 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가장 거대한 벽을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무너진 것은 단지 이 장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말합니다(에베소서 2:14). 어떤 의미에서 그 벽은 이스라엘 성전에서 이방인들을 뜰로 구분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의미에서 그 벽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벽을 지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은 구원을 얻었고 한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2:15).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도들은 하나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가족을 나누는 장벽들을 세웠습니다. 교리의 차이, 예배의 형식, 수용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엄격한 구분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인종차별 같은 선입견에 저항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들 스스로 벽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시기 위함 뿐만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 불화를 막기 위함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벽 허물기2

11/15/2021

● 성경통독 : 에베소서 4:1-6:24 ● 묵상말씀 : 에베소서 4:22-30

오늘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거나 격노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거의 다 중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문제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기 전부터 이러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갈등의 주요 원인인 분노를 다루는 것에 대한 충고를 전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분을 다루는 것과 함께 에베소 교인들이 종교적인 공상을 퍼뜨리는 공론가와 불법적인 성행위에 대해 경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가족 구성원에게 서로 어떻게 가족을 관계하게 하는지 충고를 합니다.
분노는 위험한 감정입니다. 분노는 사단의 근거지를 주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화나게 되는 것을 피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우리의 화를 키우는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해 분노로써 반응하게 될 때 파괴적인 해결을 선택함으로써 범죄하게 됩니다.
또한 육체적인 혹사나 비방을 포함할지도 모르는 범죄적인 행동의 양상을 개선시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개방해야 합니다. 만약 화를 원한으로 키운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더욱 증오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입니다.
화가 여러분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의 분노에 휩싸일 때, 여러분의 감정을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또한 해가 지기 전에 바울의 충고를 따라 여러분의 갈등을 해결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분노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게 하십시오.

건설 중

11/16/2021

● 성경통독 : 빌립보서 1:1-30 ● 묵상말씀 : 빌립보서 1:6-11

방이나 집 천제를 버튼 한번 누른다거나, 마술 지팡이를 흔들어서 수리한다면 매우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말다툼을 하지 않고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음으로써 절약되는 시간과, 잔돈을 지불하지 않아 남은 돈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러한 엄청난 유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은 부정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힘든 노동과 인내로 어려운 임무를 성취하는 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을 즐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삶은 집을 보수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지루하고, 지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한번 누름으로써 성숙하고 완전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하는 버튼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성취하고 완성하는 과정에 있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인해 용기를 얻고 그의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자마자 그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믿는 이들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점차 일하십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 사람의 일생동안 진행됩니다. 과정의 징후는 보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만 믿는 자들이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고 그동안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안에서 계속 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해있다면 삶의 좌절과 실패가 당신을 낙담시키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 속에서 시작하신 일을 선한 것으로 마치실 것을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또한, 실패와 싸우고 있을 지도 모르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격려해 주십시오.

권리가 있습니다

11/17/2021

● 성경통독 : 빌립보서 2:1-30 ● 묵상말씀 : 빌립보서 2:3-11


오늘날은 아마도 구원을 제외하고는 옳은 것보다 잘못된 것에 의해 피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단지 모든 사람들이 성경이나 헌법에 의해 보장되지 않은 많은 권리들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밤 중 어느 때라도 오디오 소리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법을 어기고 법으로부터 벗어날 권리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바울이 주는 교훈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겸손의 주이시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경배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기 합당한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리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스스로를 낮추시어 권리를 포기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굴욕적인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느 누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셨지만,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두 포기하셨습니다(빌립보서 2:5-11).
모든 악행은 권리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내 권리야”, “넌 나를 멈추게 할 자격이 없어”와 같은 이기적인 태도는 속임이나, 낙태, 물질주의,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죄들을 정당화 시키는데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이기적으로 사용하기를 거절해야할 뿐 아니라, 또한 이기적인 태도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대신에 믿는 자들은 그들 안에 겸손의 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알고지내는 사이?

11/18/2021

● 성경통독 : 빌립보서 3:1-21 ● 묵상말씀 : 빌립보서 3:8-12

많은 사람들은 흐트러질 수도 있는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안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떤 이는 “물론 나도 J를 알아"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상 J는 친구의 친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우연히 어느 날 제품의 광고방송을 보고 제품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나 어떤 물건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그에 대해 들었다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안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른 이들과 달랐습니다. 단순히 알고지내는 사이이거나 혹은 지나가면서 들은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누군가를 아는 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가 아는 누군가는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말씀을 읽을 때, 당신이 구주 예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많은 것을 성취했고, 바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의 위대함을 비교해봤을 때, 그의 업적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립보서 3:8). 바울에겐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그 어느 것 보다도 더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많은 고통과 거절, 육체적 질고와 고난을 인내하게 할 수 있었던 것, 즉 그리스도와 가까이 머물기 위함이었습니다(3:10-11).
삶의 많은 우선순위들(가족, 직업, 친구, 특정한 목표와 계획 등)이 우리에게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이 모든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며, 최우선순위이고, 최고의 선택이며 최상의 목표입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매일 작은 시간이라도 내어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생기게 되는 친구들의 비난이나 어떤 계획의 변경, 기쁨의 희생은 보상받을 것에 비하면 작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세주를 알아가기 위해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리스도를 ‘앎’을 당신의 최고의 우선순위로 만드십시오.

깨끗한 것으로 채우기

11/19/2021

● 성경통독 : 빌립보서 4:1-23 ● 묵상말씀 : 빌립보서 4:4-9

유명한 살인사건 재판에서 한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변호사는 텔레비전의 중독을 주장 했습니다. “그 네모난 상자가 저 학생이 살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는 누구에게 어떤 것을 하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장에서 진리 안에서 순결한 생각들과 진리를 숙고할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부도덕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선하고 순수한 생각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듯 보입니다. 오늘날의 영상매체들은 대부분 선정적인 것을 주제로 삼고 있고 폭력적입니다. 게다가 많은 책들과, 잡지, 그리고 신문들은 어떻게든 이러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폭력, 음란, 그리고 노골적으로 성을 다루는 매체를 옹호합니다. 그들은 폭력적인 TV를 보는 것이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요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악은 진실 되지 않고, 악하고, 나쁜 순수하지 못하고 조잡하고, 치사한 생각 속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극악무도한 생각들을 합니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타락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폭력, 악한 생각으로 채우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를 하나님과 바울의 가르침에 맡긴다면 깨끗하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즐거운 영상매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